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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법

국제해양법과 해양자원 분쟁 — 심해채굴의 법적 공백

by talk4985 2025.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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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 아래, 새로운 자원 경쟁의 시작

인류는 오랫동안 육지의 자원에 의존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지상 자원이 고갈되고 기후 위기가 심화되면서, 시선은 이제 바다의 심연으로 향하고 있다. 수천 미터 아래의 해저에는 망간단괴, 코발트, 니켈, 희토류 등 미래 산업의 핵심 광물이 잠들어 있다. 전기차, 반도체, 신재생 에너지 산업의 필수 원료가 되는 이 자원들은 ‘새로운 석유’로 불린다.
이러한 심해자원의 가치는 천문학적이지만, 문제는 소유권과 이용권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바다는 국가의 영토가 아니며, 일정 구역을 제외하고는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관리해야 하는 공공영역이다. 따라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느 범위까지 바다를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법적 문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모호성이 바로 국제해양법의 가장 큰 과제이자, 심해 채굴을 둘러싼 분쟁의 출발점이다.

국제해양법과 해양자원 분쟁 : 심해채굴의 법적 공백-심해저 광물 분포와 EEZ 경계를 보여주는 세계 해양 지도 이미지”

2. 유엔해양법 협약(UNCLOS)과 국제해저기구의 한계

1970년대 국제사회는 해양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을 제정했다. 협약 제11부는 심해저와 그 자원을 “인류 공동의 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으로 규정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기구로 국제해저기구(ISA) 를 설립했다. 이 기구는 각국이 신청한 탐사·채굴 구역을 승인하고, 기술 기준과 환경 보호 규정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협약이 발효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규범은 빠르게 발전한 기술과 복잡한 경제 이해관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심해저 채굴을 위한 로봇 장비나 AI 기반 자원 탐사 기술은 이미 상업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이에 대한 법적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특히 ‘2년 규정(Two-year rule)’ 이 큰 논란을 낳고 있다. 2021년 나우루가 발동한 이 규정은 ISA가 채굴 규정을 제정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원국이 상업 채굴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조항은 사실상 ‘규제 없는 개발’을 가능하게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거센 비판을 불러왔다. 결국 현재의 해양법 체계는 과학기술의 속도와 환경보호의 필요성 사이에서 심각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3. 환경보호와 개발권의 충돌

심해저는 아직 인류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생태계다. 미생물, 해양저서생물, 심해산 산호 등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독특한 생명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흙 퇴적물, 소음, 중금속 오염은 이 섬세한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해저기구는 ‘환경영향평가(EIA)’ 절차를 의무화하려 하지만, 구체적 기준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문제는 경제 논리다. 심해저 자원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 각국은 환경보다는 산업 경쟁력 확보를 우선시한다. 특히 기술력을 가진 선진국과 자원 접근권이 제한된 개도국 간의 이해관계 차이는 크다. 선진국은 “개발을 통한 기술 혁신”을 강조하고, 개도국은 “공유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주장한다. 그 결과, 심해자원 개발은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경제 이익’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한 채 법적 공백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이 경제력의 불균형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가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4. EEZ와 공해의 경계: 보이지 않는 분쟁선

국제해양법은 연안국에 일정 범위의 경제적 권리를 인정한다. 각국은 해안선으로부터 200해리(약 370km) 이내를 배타적 경제수역(EEZ) 으로 설정해, 그 안의 자원 개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EEZ를 넘어선 바다는 공해(公海)로, 모든 국가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해저 광물이 두 구역에 걸쳐 분포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남태평양이나 인도양의 일부 지역에서는 EEZ와 공해 사이의 자원 분포가 겹쳐, 어느 나라가 탐사권을 갖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분쟁은 단순히 자원 문제를 넘어 외교적 긴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몇몇 국가는 EEZ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확장하거나, 군사적 해양조사를 명분으로 자원 탐사를 병행하기도 한다. 그 결과, 해양법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해양법의 기본 정신은 ‘공유의 질서’인데, 현실에서는 ‘선점의 논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법적 권한의 공백을 명확히 보여주며, EEZ 해석을 둘러싼 새로운 국제 판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해양법과 해양자원 분쟁 : 심해채굴의 법적 공백-심해저 광물 분포와 EEZ 경계를 보여주는 세계 해양 지도 이미지”

 

5. 미래의 해양 거버넌스와 법의 방향

심해채굴의 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첫째, 국제해저기구의 규제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닌, 환경과 인권을 아우르는 준사법적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둘째, 환경영향평가의 투명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모든 탐사 활동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평가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결과는 국제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셋째, 분쟁 해결 메커니즘의 실효성 강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는 권고적 기능에 머무르고 있어, 구속력 있는 판결 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나아가, 바다는 단순한 자원의 저장고가 아니라 인류의 공동 생명 기반이다. 심해저를 둘러싼 경쟁이 또 다른 ‘바다의 골드러시’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법이 기술보다 한발 앞서 미래의 해양 질서를 설계해야 한다. 인류가 바다에서 얻어야 할 것은 이익이 아니라 공존의 원칙이다. 법이 그 원칙을 세울 때, 심해는 비로소 지속가능한 인류의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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