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 위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
국제 사회에서 바다는 단순한 교통로가 아니라, 어업·에너지·해저자원 개발 등 다양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집중되는 공간이다. 특히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전 세계 해양 질서를 규율하는 기본 틀이 되었다. UNCLOS는 연안국이 해안으로부터 200해리(약 370km)까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정할 권리를 인정한다. EEZ에서 연안국은 어업, 석유·가스 탐사, 해저 광물 채취 등 자원 이용에 대해 주권적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해양은 육지와 달리 자연스러운 경계가 없기 때문에, 인접국 간 EEZ가 중첩되면 경계 획정과 자원 개발을 둘러싼 분쟁이 불가피하다. 학문적으로 EEZ 분쟁은 국제법과 국제정치가 교차하는 대표적 영역으로, 국제법원(ICJ)과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져 왔다.
2. EEZ의 법적 개념과 경계 획정 원칙
EEZ는 영해(12해리)와 달리 국가의 완전한 주권 영역이 아니다. 연안국은 자원 개발과 환경 보호에 관한 주권적 권리만 가지며, 타국 선박의 항행 자유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는 UNCLOS 제56조와 제58조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계 획정(boundary delimitation)**이다. 인접국의 EEZ가 겹칠 경우, 협정을 통해 합의하거나 국제 재판을 통해 획정해야 한다.
국제 판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등거리/중간선 원칙(equidistance principle)”**과 **“관련 사정 원칙(relevant circumstances rule)”**이다. 즉, 해안선에서 같은 거리를 기준으로 경계를 긋되, 지리적 특수성(섬의 존재, 해안선 길이, 인구 등)을 고려해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1969년 북해 대륙붕 사건에서 처음 명확히 확인되었고, 이후 다수의 판례에서 반복적으로 적용되었다. 학문적으로 EEZ 경계 분쟁은 단순한 국제법 적용을 넘어, 지리학·지질학·경제학이 결합한 복합적 연구 과제로 평가된다.
3. 실제 국제 분쟁 사례
첫째, 대한민국과 일본 간 이어도(소코트라 암초) 문제다. 이어도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수중 암초로, UNCLOS상 “섬”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EEZ 경계선이 중첩되는 해역에 자리 잡고 있어 양국은 자원 탐사 권리를 두고 대립해 왔다. 한국은 2003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했고, 중국은 EEZ 권리를 주장하며 항의했다. 이 문제는 한중 간 EEZ 획정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둘째, 남중국해 분쟁이다. 중국은 ‘9단선’을 근거로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지만, 2016년 필리핀 v. 중국 중재 판정에서 중재재판소는 이를 국제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판정은 중국의 광범위한 권리 주장을 부정하고, UNCLOS 규범에 따른 EEZ 해석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중국은 판정을 수용하지 않았고, 이는 국제법 집행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셋째, 미국과 캐나다의 대륙붕 경계 분쟁이다. 양국은 알래스카 인근의 풍부한 석유·가스 자원을 둘러싸고 갈등해 왔으며, 일부 구역에서는 아직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학문적으로 이 사례는 자원 개발 이익이 EEZ 경계 분쟁을 얼마나 심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4. 분쟁 해결 메커니즘과 학문적 논의
EEZ 분쟁은 국제법적 해결 메커니즘을 통해 조정된다. 첫째, 당사국 간 양자 협상이다. 많은 국가는 정치·경제적 타협을 통해 중첩 수역을 공동 개발하거나, 일정 기간 공동 관리 구역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해 EEZ 경계 문제를 임시로 조정했다.
둘째, 국제 재판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는 EEZ 분쟁 사건을 다수 처리해 왔다. 예컨대 **루마니아 v. 우크라이나 사건(2009)**에서 ICJ는 흑해 경계 획정을 다루며, 작은 섬의 법적 효과를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학문적으로 이 판례는 섬의 지위와 EEZ 획정의 관계를 규명한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셋째, 중재 절차다. 남중국해 중재 사건처럼 특정 국가가 재판을 거부할 경우, 일방적 신청에 따라 중재 절차가 개시될 수 있다. 이는 국제 분쟁 해결에서 중재가 가지는 보완적 역할을 보여준다.
5. 국제 해양법의 미래와 EEZ 분쟁의 교훈
EEZ는 연안국의 경제적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국제 항행의 자유와 타국의 이익을 보장해야 하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이를 관리하는 국제법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학문적으로 EEZ 분쟁 연구는 국제법의 실효성, 주권 개념의 한계, 다자주의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한국과 같은 해양국은 EEZ 분쟁의 법리를 철저히 이해하고, 국제 재판 판례를 축적하며, 동시에 협상과 외교적 타협을 병행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해양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국제법적 위험을 고려한 법률 검토가 필수적이다. 결국 EEZ 분쟁은 단순한 해양 경계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 질서의 안정성과 국가 간 협력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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